
우리는 모두 인정받고 싶지만 숨기며 살아간다.
처음에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봤을 때는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정돈된 이야기 같지도 않았고 주인공 같아 보이는 황동만이라는 캐릭터는 미친놈 같고 정이 가지도 않아서 보다가 중간에 꺼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인기 순위 상단에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은 왜 이런 드라마를 좋아하지? 이유가 있나?'
하는 궁금함이 들어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다음 화를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드라마는 자극적인 사건으로 몰아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대신 사람 마음 속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들을 너무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끌리다.
극 중 황동만은 인간의 본성을 유리그릇처럼 보여주는 캐릭터 같다.
보다 보니 문득 제작진이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역시나였다.
내 인생 드라마였던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의 작가였다.
그래서였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오래 좋아했던 드라마들은 다 비슷했다.
엄청난 사건보다 그냥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일 없는 하루인데 그 안에서 무너지고 버티고 또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모두 인정받고 싶어서 아프다.
황동만은 정말 묘한 캐릭터였다.
처음에는 관종 같고 미친놈 같고 철없어 보인다. 그런데 보다 보면 현실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은 사람이다.
미워하려고 해도 이상하게 연민이 간다.
어떤 순간에는 부럽기까지 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못할것 같은데 그는 뒷일 생각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낸다.
솔직하고 서툴고 때로는 너무 과하다.
그런데 그 솔직함이 사람 마음을 건드린다.
우리는 모두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 인정받고 싶어요"
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괜히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애쓰고 움직이는 이유가 마치 관심받고 싶어서인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정욕구를 숨긴다.
쿨한 척하고 괜찮은 척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황동만은 결국 당당하게 외친다.
"나 인정받고 싶어 미치겠어!!'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을 세게 쳤다.
너무 솔직해서였다.
사실은 우리도 다 비슷하지 않을까.
칭찬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이고 싶고, 내 존재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그래서 감추지 않고 처절하게 드러내는 황동만이 웃기면서고 슬프고 또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모두가 싫어하던 황동만을 변은아는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다.
고쳐야 할 사람처럼 대하지 않는다.
한심한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준다.
그래서 황동만은 더 이상 인정에 굶주리고 문전박대에 찌든 사람이 아니라, 잡초 속에 묻혀 있던 꽃 같은 존재로
다시 피어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은 결국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사랑받을 때
본연의 빛을 발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바뀌라고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그를 때로는 공감의 눈으로 때로는 안타까움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시선 하나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정을 모르고 살아간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다 보면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된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이고, 짜증 나고, 왜 저러나 싶었던 사람들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단편적인 모습만 봤을 때는 정말 나쁜 사람 같고 이해되지 않는 사람인데,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는 그 사람의 외로움과 결핍과 사정을
끝까지 보여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따지기보다
'아... 저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황동만의 형도 그랬다.
늘 술을 마시고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어 보인다.
그냥 눈을 뜨니까 살아가는 사람 같다.
그렇게 술을 마시며 버티다가 결국 또 자살 시도를 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완전히 삶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주 희미하지만 삶의 축 같은 것이 남아있다.
그래서 자꾸 응원하게 된다.
누군가 그 사람 마음 위에 오래 얹혀 있던 무거운 돌덩이를 조금만 치워줬으면 좋겠고,
억지로 행복해지라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숨 쉬듯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내일 눈을 떠도 기다려지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
식당에서 술을 주체하지 못하고 토하고 쓰러지는 한심해 보이는 사람도 그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사람 안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입장이 있다.
왜 그렇게 무너졌는지.
왜 술에 기대게 되었는지.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도 쉽게 미워할 수 없다.
어쩌면 현실에서도 우리는 누군가의 가장 무너진 순간만 보고
너무 쉽게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언젠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부족한 모습도, 지질한 모습도, 무너진 순간들도 고쳐야 할 문제처럼 보지 않고
그냥 "네가 지금 이 순간은 이렇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
사람은 완벽해져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받을 때
비로소 숨을 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쉽게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단정 짓지 않고, 그 사람의 겉모습 뒤에 있는 외로움과 상처까지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인정받고 싶어서 아픈 사람들이고, 또 누군가를 인정해 주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