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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허들>을 보고, 나를 살게 한 한 사람을 떠올렸다

by zabara98 2026. 5. 28.

영화<허들>

 

"그럼 저는 누가 돌봐줘요?"라는 질문이 남긴 것

영화 <허들>을 보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 수 없었다.

 

가슴이 먹먹했고 답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계속 입장을 바꿔가며 생각했다.

 

내가 서연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서연의 아빠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친구인 민정이었다면, 코치였다면, 간병인이었다면, 간호사였다면, 판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누구 한 명이라도 이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누군가 한 사람의 악의 때문에 벌어진 비극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사정과 무관심, 침묵이 조금씩 쌓여 한 아이를 얼마나 외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마지막 변론 장면에서 결국 눈물이 났다.

 

서연이는 절규하듯 묻는다.

 

"그럼 저는 누가 돌봐줘요?"

 

그 말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다.

 

아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고,

 

학교에 던지는 질문이었고,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었으며,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렸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또 다른 서연이가 있을지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는 또 다른 서연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누구인지 모른다.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

 

어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설령 알게 된다고 해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상담사도 아니고 사회복지사도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꿀 능력도 없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 아이가 그런 아이와 친구가 된다면 나는 어떤 부모가 될까.

 

혹시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며 거리를 두라고 말하지 않을까.

 

혹시 내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경계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과 실제 삶에서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 속 식당 아주머니가 알려준 것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마음에 남은 사람은 의외로 식당 아주머니였다.

 

거창한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고 아이를 걱정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이 가장 좋았다.

 

배고픈 아이에게는 밥이 필요했고,

 

외로운 아이에게는 관심이 필요했고,

 

상처받은 아이에게는 자신을 바라봐 주는 눈빛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생각보다 거창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부를 묻는 말 한마디.

 

따뜻한 식사 한 끼.

 

잘 지내고 있냐고 묻는 관심.

 

그런 작은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의 작은오빠였다.

 

내가 삶을 놓고 살던 시절

20대 후반의 나는 삶을 거의 놓고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우울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아무 의욕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떠야 할 이유도,

 

미래를 계획해야 할 이유도,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걱정한 작은오빠는 어느 날 말했다.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지내자."

 

당시 오빠는 어린 조카를 키우고 있었고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반지하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게 방을 하나 내어주었다.

 

나는 그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낮에는 잠을 잤고,

 

밤이 되어 가족들이 모두 잠들면 조용히 일어나 보일러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방으로 돌아봐 컵라면을 먹었다.

 

그게 나의 하루였다.

 

지금 생각하면 올케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에게 왜 저러고 사냐고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린 조카의 웃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차 뒤에서 건네받은 담배 한 개비

어느 날 오빠가 나를 밖으로 불렀다.

 

그리고 차 뒤편으로 데려가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고등학생들처럼 한 대 피워볼까?"

 

그러면서 내게 담배를 건넸다.

 

그 순간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미안하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가 내게 건넨 것은 담배가 아니었다.

 

"너 담배 실컷 피워라."

 

라는 뜻도 아니었고,

 

"왜 그런 데서 피우냐, "

 

"정신 차려라."

 

라는 잔소리도 아니었다.

 

오빠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나를 고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 말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네 편이다."

 

보일러실에서 숨어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숨어 지내는 내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오빠는 내가 왜 그렇게 힘든지 알고 싶어 있다.

 

무슨 이유로 무너졌는지 듣고 싶어 했다.

 

그 따뜻한 눈빛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날이 내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었다.

 

누군가가 아직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사실이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살아진다.

그래서 영화 속 서연이의 외침이 더욱 가슴 아프게 들렸다.

 

"그럼 저는 누가 돌봐줘요?"

 

만약 서연이에게도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무조건 믿어주는 사람.

 

아무 조건 없이 네 편이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 한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작은오빠를 보며 늘 생각했다.

 

세상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영웅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가 힘들 때 잠시 기댈 수 있는 사람.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넬 수 있는 사람.

 

말없이 "나는 네 편이야"라고 알려줄 수 있는 사람.

 

영화 <허들>이 내게 남긴 것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살리는 것은 거대한 기적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한 사람의 믿음과 따뜻한 관심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해 본다.

 

미안해. 서연아.

 

우리가 너를 너무 늦게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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